100분 토론, 홍준표에게 왜 웃어주는가?
소문난 잔치가 생겼다.
100분 토론 20주년이란다.
그리고 유시민이 나온다고 한다.
소문난 잔치다.
그래서 기다렸고 잠깐이나마 봤다.
10분을 못 버텼다.
어제의 100분 토론은 토론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술 취한 아저씨의 아무말 대잔치를 어르고 달래는 어느 지식인의 모습이 보였다.
토론이 아니었다.
이런 것을 자꾸 토론이라고 말해주니, 우리 사회에서 토론이 사라져간다.
토론이란 논리로 대결하는 것이다.
그 논리는 합리적이라고 평가되는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그런 논리를 말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토론이 거짓과 왜곡을 늘어놓고 팩트라고 말하며 근거라고 우기는 그런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그 시초는 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토론을 잘하시는 여성 논객 1위
나경원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토론이 실종됐다.
그래서 100분 토론에서 홍준표가 아무말을 할 때마다 들려오는 방청객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뼈아팠다.
토론장은 경로 우대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나이대접을 해주기 위해 웃음 대접이 필요한 곳이 아니다.
토론의 형식으로 토론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싸늘해야 한다.
진행자도, 방청객도...
진짜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를 되살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100분 토론도 토론의 대명사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바보짓을 보고 웃고 싶다면 대학로의 슬랩스틱 코미디 공연을 보면 된다.
100분 토론에서 토크 슬랩스틱을 보고 싶지 않다. 더 이상은...
토크 슬랩스틱에
웃어주지 말자!
어제 유시민도 답답해하는 모습이 찐하게 흘러나왔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저런 비열함을 토론이라고 논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토론 문화의 실종으로 저런 악의를 논리라고 생각하고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 그 답답함을 토로한 장면이다.
저런 청년이 청년의 대표성을 획득한 채,
청년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저런 식으로 질문하고 있으니...
어제 100분 토론이 남긴 유일한 교훈은 두 사람의 격차였다.
타이틀 하나로 살아온 자 vs 지혜를 쌓으며 살아온 자
홍준표, 이 정도까지 무너져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젊은 때는 간혹 총기가 슬쩍슬쩍 비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모습은...
홍준표의 삶이 그대로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 안다고 생각하며 내지르고 보는 전형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냐 하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모르는데도 아무말이나 하고 보는 수준이다.
2가지 예만 들어보자.
유: 대한민국 검찰 법 안 지킨다. 동료 여검사 성추행해도, 소송 서류 위조해도 처벌 안 받잖는다.
홍: 검사도 처벌 다 받는다.
유: 지금 임은정 검사가 고발한 게 그런 거다.
홍: 이런 식으로 토론하면 되나?
홍: 경제가 어렵다. 홍대 앞에 공실이 그렇게 많다.
유: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좀 알아보자.
홍: 옛날에는 왜 다 찼냐? 논리학이고 뭐고 물어보자.
유: 제발 젠트리피케이션 좀 검색해서 조금만 스스로 알아보라.
토론을 보고 싶다.
가짜 뉴스로 아무말하고, 조작과 왜곡 근간의 저열한 궤변이 아닌,
논리와 논리가 창과 방패가 되어 첨예하게 부딪히는 토론을 보고 싶다.
토론에 나와서 토론하기 싫어하는 이에게는 웃어주지 말자.
웃어주지 말자.
싸늘하게 입꼬리만 올리자.
저런 아무말에나 웃어주는 모습을 보니 괜히 노회찬형에게 미안해지는 밤이었다.
이게 토론에서의 웃음이다.
100분 토론은 한참이나 더 고민해야 할 듯하다.
제발 토론다운 토론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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