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백건우와 윤정희
네이버 실검에 올라온 '윤정희'라는 이름이 뜬금없어 클릭했더니, 윤정희 선생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기사가 실렸다.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다. 40년을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며 예술의 세계를 더욱 돈독히 만들었던 이들 부부에게 윤선생님의 병은 가장 큰 시련이 아닐지... 팬들의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백건우 선생님은 마음이 에이듯 슬프고 힘들 것이다.
두 사람을 보면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세계가 넓고 깊어지는 만큼 이들의 사랑도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존경도 겹겹이 쌓여가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윤정희 선생님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시>를 찍었을 때, 그들의 사랑이 서로의 예술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넓혀가는구나 하여 더더욱 감동적이었는데... 이제는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시>의 미자가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것도, 이 영화를 찍을 무렵부터 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올해 쇼팽 탐구에 이어 내년에 백건우 선생님은 슈만을 탐구한다고 한다. 슈만이 그나마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클라라의 사랑과 음악 덕분이었는데,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슈만을 어떻게 자기화할까? 여전히 아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강한 남편을 아내는 겨우 알아본다고 한다. 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남편은 알아본다니,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시 한번 마음이 스산해진다. 부디 윤정희 선생님이 더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2018년 10월 어느 날,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백건우 선생님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었다. '위대한 협주곡'이라는 제목으로, 스페인의 음악가와 인상주의 음악의 여정을 함께 했던 연주회였었다. 그날 윤정희 선생님을 뵈었었다. 나의 옆옆 자리에 앉아 조용히 남편의 연주를 바라보던 윤선생님, 남편의 연주회가 끝나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박수를 치던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라고 인사를 드렸듯이 고맙게 인사를 받아주던 모습까지. 병이 깊어 많은 것을 잊어버려도 남편의 사랑만은, 남편의 음악만은 잊지 않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늦가을 바람이 참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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