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날개처럼 영화 벌새를 보고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벌새 영화는 당시의 삶 속에 묻혀있던 한 아이, 은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벌새는 끊임없이 파닥거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어두운 집안에서 살려고 파닥거리는 은희의 몸짓이 인상적인 영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손가락을 펼치고 하나씩 움직여보면 그래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화 속 한문 선생인 영지는 은희에게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해주지만 그녀 역시 서울대 생일뿐 삶은 우울하고 부족한 정체성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중학생 은희가 기대던 선생님의 모습은 대뜸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친구'의 정의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며 그러 자신을 따지지 않고 차 한잔 따라주며 들어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해지기도 한다는 것.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지속되는데 은희라는 생명력 넘치는 존재, 날라리로 몰아붙이기도 하며 공부에는 흥미 없지만 그림 그리는 것,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로 채워진다. 배우 박지후는 '은희' 역할을 하며 한 명의 당시 1994년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 때론 도둑질도 했지만 악의는 없었고, 자신이 나쁜 짓을 해도 돌보러 와주지 않고 장남에게만 집중되는 집안, 떡집을 도우면서 손에 물집 잡히도록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 힘든 삶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싸우기도 하지만 삶 속에 뭉개지는 하루하루.
그 사이를 비집고 일탈을 해보지만 변하지 않는 삶, 연애도 해보지만, 동성의 후배에게 고백받아 다른 사랑을 해보려 하지만 잘되지 않음을. 그녀는 상처를 받으며 벌새처럼 발버둥 치고 있음을. 문고리를 잡고 세차게 흔들며 남의 집 문을 우리 집으로 착각해서 잡아당긴 것은 다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갑작스레 왼쪽 귀밑에 혹이 느껴져 가보니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때야 울어젖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이해가 되지 않음을. 안면마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 좋지는 않았을까. 고기 한 점 더 올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좋지 않았을까. 외삼촌의 상실로 아파하는 어머니에게 미칠 듯이 엄마라고 불러도 정신이 나간 어머니에게 있다 없어진 존재는 어떤 것이었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그때의 시절로 되돌아간 향수를 느끼는 것이 싫지는 않았음을. 잠시뿐인 행복도 지나고 나면 불행일지도 불행이라고 생각한 당시도 지금에서는 그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의미 있게 본 작품이었다. 배우 박지후의 발견처럼. 굉장한 여운이 많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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