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걸이부터 다른 팝업, 스튜디오 오유경
By buzz - 11월 10, 2019
스튜디오 오유경으로 재탄생한 모스카
2009년 출시한 패션 브랜드 모스카가 2019년 가을 스튜디오 오유경으로 조용한 변신을 꾀했다. 패션 브랜드로 한정하기보다 디자이너 오유경을 중심에 두고 스튜디오 개념으로 다양한 활동을 유연하게 펼치고자 하는 것. 10년 만에 브랜드 이름을 변경한 스튜디오 오유경의 2019 FW 컬렉션 역시 패션쇼 대신 팝업 매장으로 서촌 무목적 빌딩 3층에서 10월 22일까지 열린다.
시선이 집중되는 패션쇼가 아닌 차근차근 작업을 소개하는 팝업이란 방식을 선택한 이유, 정성껏 지은 옷을 걸 만한 마땅한 옷걸이가 없어 컬렉션마다 여러 디자이너와 집기를 직접 만들게 된 사연, 그리고 옷으로 표현하고 있는 오유경이 좋아하는 것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스카에서 스튜디오 오유경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있나?
모스카가 그간 보여준 콘셉트와 방향 안에 갇힌 느낌이 있었다. 여기에서 조금 어긋나면 브랜드가 흐트러진다. 스튜디오 오유경은 내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반대로 중심을 둘 수 있는 부분이 자유로워진다. 브랜드보다 스튜디오 개념이 책이나 사진집 제작 같은 다양한 활동에도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오유경’이란 사람이 아직 엄청나게 정의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가능성을 더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앞으로 펼칠 다양한 행보를 염두에 둔 이름이다. 여러 영역을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2017년 이태원 세컨드 호텔에서 처음으로 팝업 형태로 모스카 컬렉션을 소개했다.
팝업 형태로 우리 브랜드를 소개한 건 2017 FW부터다. 컬렉션을 남다르게 소개해야 한다는 대단한 결심 같은 건 사실 없었다. 이전에는 브랜드가 가진 하나의 콘셉트를 영원히 지켜야 하고, 내가 늙어도 브랜드는 항상 젊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출산과 육아를 통해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많이 바뀌었다. 내 삶과 몸에 온 여러 변화로 인해 트렌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전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과감한 형태와 색상으로 선보였던 이전 모스카의 방향을 유지하는 게 맞지 않게 느껴졌다. 이전과 달라진 모스카를 보고 같은 브랜드인지 헷갈려 하는 소비자가 많아 우리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세컨드 호텔에서 팝업 형태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 팝업이다. 팝업이란 형식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내가 어떤 의도로 이런 옷을 만들었는지 직접 설명할 수 있어서 좋다. 패션쇼에서는 앞 열에 누가 앉았는지 어떤 모델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브랜드마다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부분이 있다. 물론 아닌 분도 있지만. 이와 관계없이 나와 내 브랜드를 모르고 찾아와 편하게 옷을 입어보고 옷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재미있다.
패션쇼는 20분 내외로 끝난다. 상설은 아니지만 팝업은 패션쇼에 비해 꽤 시간을 두고 컬렉션을 보여줄 수 있는 듯하다.
패션쇼는 룩을 보여주는 자리다. 모델이 워킹하며 지나갈 때 어떤 분위기를 자아낼지, 헤어나 메이크업은 어떤 모습일지, 모델의 자세나 행동이 어떨지 등이 중요하다. 이와 달리 팝업 매장에서는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생산자 입장에서 생생하고 정확한 정보와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다. 패션쇼에서 무대와 헤어, 메이크업에 신경 쓰듯 나는 팝업 매장의 분위기, 행거나 옷걸이 같은 집기 등에 고민하게 됐다. 이런 부분 역시 브랜드의 방향성과 콘셉트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옷걸이와 행거에 대한 고민을 처음으로 한때는 언제인가?
패션쇼와 달리 팝업 매장에서는 옷뿐만 아니라 공간과 옷걸이 같은 소품을 소비자가 직접 체험한다. 옷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첫 팝업부터 아름다운 옷걸이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당시 이케아, 헤이 등 다양한 브랜드의 옷걸이를 시도했지만 우리 브랜드랑 잘 맞지 않았다. 이럴 바엔 우리가 직접 행거나 옷걸이 같은 집기를 직접 제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 FW를 선보인 세 번째 팝업에서부터 디자이너에게 직접 집기 디자인을 의뢰했는데, 그래픽 디자이너 조규형이었다.
2018 FW의 콘셉트는 ‘POINT POINT POINT’였다. 우리가 생각한 어떤 지점에 서 있는 디자이너, 그 지점에서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생각한 분에게 의뢰했다. 사실 조규형 그래픽 디자이너 역시 지인이다.(웃음) 우리 콘셉트를 다른 창작자와 공유하고 다른 창작자가 이를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
옷걸이와 행거 같은 집기를 본격적으로 디자인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패션 관계자들에게 팝업 관련 초대장을 보내면 ‘옷걸이와 행거 같은 집기에 신경 쓰지 말고 옷을 더 만들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보통 패션쇼에서는 3~50벌 정도의 착장이 소개되고, 신제품이 100점 정도 나오는데, 우리는 총 5점밖에 안 됐다. 그중 하나는 가방이었다. 옷 4점을 보러 오라고 하면 ‘그걸 보러 가야 돼?’라고 물었다. 워낙 패션 관계자들이 솔직하고 막역하다.(웃음) 패션은 원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산업이라 다른 디자인 분야와 구조와 물성이 다르다. 무엇보다 몸과 마네킹에 옷이 걸리는 순간이 상당히 중요하다. 패션 관계자들은 옷걸이와 행거 같은 집기를 따로 제작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못한 것 같다. ‘돈 많이 들지 않아?’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패션 관계자가 많이 안 왔다. (웃음)
2019 SS 팝업이 열린 삼청동 프린트 베이커리에서는 나무를 소재로 하는 임정주 작가와 함께했다.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머릿속으로 브랜드를 재구상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색, 내가 좋아하는 패브릭, 내가 좋아하는 선, 내가 좋아하는 공간감 등을 고민해보니 아주 단순한 것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점, 선, 면 같은 단순한 주제에서 파생한 콘셉트를 중심으로 컬렉션을 진행하는데, 임정주 작가 역시 그런 부분에 잘 맞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SHADE FROM OBJECTS’라는 2019 SS 콘셉트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오브젝트의 그림자에 주목했다. 점을 연결한 선, 선이 모인 면, 이런 기본 요소가 구축한 하나의 오브제, 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생각했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밝은 빛 같은 그림자가 되길 바랐다. 따뜻하고 밝은 색상을 사용하고 싶어 나무라는 소재로 컬렉션 집기를 구성하고 싶었다. 이런 부분을 임정주 작가의 방식으로 잘 풀어 주었다.
2019 SS 컬렉션은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 같기도 했다. 한국적인 무드가 느껴졌는데….
모스카 초반에는 내 스스로 끼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단도 잘 다루고 싶고, 테일러도 잘하고 싶고, 니트도 잘하고 싶고, 패턴도 잘 다루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지금은 단순하게 내가 어떤 점, 선, 면을 좋아하는지 하나씩 구분해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옷과 몸 사이의 공간감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몸과 원단 사이의 공간감. 작은 사람이 입어도 큰 사람이 입어도 그 사람마다 어울리는 공간감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이 어떻게 보면 동양 복식과 닿아 있을 수도 있다. 모스카 시절 한복 같다는 평을 종종 들었는데, 당시에는 썩 좋은 평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기분 좋게 생각한다.
이번 2019 FW는 산업 디자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튜디오 밀리언로지스와 함께했다.
그림자를 생각하다 보니 어둠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어둠을 나타낼 수 있는 색이 결국 블랙이었다. 블랙이란 색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어둡고 강한 것과 반대되는 물성 중 연약하고 예민해 보이는 유리를 사용해 대비되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스튜디오 밀리언로지스가 유리 작업한 걸 보고 의뢰하게 됐다. 되돌아 보니 물성에 따라 디자이너를 선택한 것 같다. 무엇보다 스튜디오 밀리언로지스가 그간 보여준 작업이 좋기도 했다. 무목적빌딩 역시 유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 구성이 우리 컬렉션과 잘 맞아 콘택트 하게 됐다.
이번 컬렉션 주제인 ‘BLACK NOT DARKNESS’에 대해 소개해달라.
블랙이란 색상을 중심으로 이 색이 가진 속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블랙은 모든 색상을 흡수하는 색이다. 어두움 안에 빛을 품고 있다. 블랙이 가진 잠재력을 에세이집과 사진집 같은 매체로도 표현하고, 검은 옻칠을 얇게 여러 번 한 블랙 종이 같은 작품으로도 표현하고 싶었다. 블랙을 보통 무심한 듯 시크하거나 근엄하고 엄숙한 색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보다는 자연스러운 색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모든 색을 품은 자연스러운 색이다.
컬렉션 때 사용하는 원단 소재가 비슷해 보인다.
면과 나일론을 적당히 섞어 두 소재의 장점이 하나에 잘 모인 소재를 사용한다. 가격, 세탁, 형태 변형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라 판단해 사용할 뿐이지 대단한 이유가 있어 고집하는 소재는 아니다. 오염이 잘 안되고 물 빨래도 편하게 할 수 있고 다리미질을 굳이 하지 않아도 돼 상당히 실용적이다.
이번 컬렉션은 남녀 공용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몸을 가지고 있고, 옷을 입었을 때마다 다른 공간감이 나오는데, 그게 그대로 아름답기를 원했다. 이런 부분을 남자에게도 적용해봤다. 같은 옷을 남자가 입었을 때와 여자가 입었을 때 약간 다른 공간감을 가진다면 어떨까? 그 공간감이 전달하는 편안함과 자유로움, 아름다움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별에 관계없이 자기 몸에 맞는 옷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컬렉션에 조은혜 작가의 에세이집 <말하진 않았다>와 맹민화 사진가의 사진집도 스튜디오오유경이란 이름으로 같이 공개했다.
우리 브랜드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옷, 사진, 모델이 입은 룩만으로는 표현이 안 된다. 굳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창작자가 내가 생각하는 주제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자체가 스튜디오오유경을 성장하게 해준다. 사진집과 책도 사실 처음이라 아직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라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개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더 찾아보고 있다. 자아실현이 안 돼서 자아실현하는 중이다.(웃음) 스튜디오 오유경은 앞으로 다른 영역의 창작자를 만나 좀 더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각과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지 꾸준히 고민하고자 한다. 곧 디자인 패브릭 브랜드 키티버니포니와 함께 단순하고 실용적인 라이프 웨어를 소개할 예정이다. 10월 29일부터 11월 17일까지 합정동 메종 키티버니포니에서 열릴 팝업도 기대해주면 좋겠다.
* 스튜디오오유경 온라인스토어
글 | 디자인프레스 객원에디터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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