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Letter: 감명 깊었던 책 반전의 대가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11월 10, 2019

From, 블로그씨

나를 사로잡은 감명 깊은 책 한 권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으세요? 블로그씨는 어린 왕자가 기억에 남아요

블로그씨 질문에 대한 답은 늘 명확했는데, 이렇게 할 말이 많아서 고민인 주제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서하는 습관'이 내게 미친 영향은 굉장히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감명 깊은 책 역시 수도 없이 많지만, 꼭 한 권을 꼽아야 한다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다. 월드컵 대진표처럼 추리다 보니 나온 공통점은 바로 김영하 작가.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이지만, 처음 그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연이은 히트작으로) 이제 막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처음 접한 그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고, 참 낯설었다. 그 후 그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였고 '와!'라는 감탄사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동안 '한국 작가 누구 좋아해?'라고 물으면 1초의 고민도 없이 '김진명 작가님이요-실제로 그는 나의 청소년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라고 대답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김영하 작가님 좋아합니다'라고 바뀌었을 정도.

처음 그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 바로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이제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익숙하지만-사실 영화는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연기력은 훌륭했지만, 아무래도 설정이나 스토리 자체가 달라져서인 듯- 그 내용은 몇 번을 읽어도 참 낯설다. 처음 읽었을 땐 그저 놀라웠고, 두 번째는 그저 재미있다가 세 번째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좋은 책이란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책이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용이 잔인하고 비극적이긴 하지만) 이 책 역시 좋은 책이 아닐까.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처음부터 이토록 강력한 문장이라니! 두근거리는 심장이 채 정상으로 돌아올 새도 없이 순식간에 소설 속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살인자가 측은해 보이다가도 증오가 불타오르고, 그에게 공감이 되다가도 공감된다는 사실 자체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감정의 널뛰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주위의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온전히 빠져든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딸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또 다른 살인이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작가의 능력이란!) 툭툭 내뱉는 말에서 무게가 느껴지고, 쓸데없이 비장하고 진지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때로는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한 번 펼치면 중간에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엄청난 흡입력을 갖고 있다.